인터뷰에 응해주신 (좌측 상단부터 우측으로) 강안나, 안화자, 조화숙, 김정엽, 김응환, 김경림, 양재숙, 박용수님
이민 온 지 어느덧 30~40년을 훌쩍 넘긴 호주 한인 어르신들의 ‘설 이야기’, 그 시간을 담아본다.
조은아 프로듀서: 호주 한인 어르신들에게 설날의 의미는 남다를 겁니다. 한국의 전통과 호주의 문화가 어우러진 호주에서의 설날의 풍경은 고국에서와는 또 다른데요, 이민 온 지 어느덧 30~40년을 훌쩍 넘긴 호주 한인 어르신들의 ‘설 이야기’, 그 시간을 담아봅니다.
고국에서는 설이 되면 자주 보지 못했던 가족들을 만나고 또 다양한 명절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어 마치 어린시절 소풍 전날 설레고 기대됐던 마음처럼 들뜨기도 하는데요, 호주로 이민 온 지 어느덧 약 40년이 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설을 쇠고 있을까요?
81년에 호주에 온 강안나 할머니는 설날이면 가족들과 북적북적하게 지냈던 고국의 설을 추억합니다.
강안나(87) 할머니: 추억이라고 하면 그냥 음력설 때마다 형제들 다 친척들 모여서 나누던 그 옛날이 그립죠. 특별한 기억이라는 거 뭐 아이들 세 배 하면 세뱃돈 주는 재미고, 다른 거 또 뭐 그날은 차례 지내니까…차례 지낼 때 온 식구들이 다 모여서 조상님께 절하고 하는 게 그렇게 추억에 남죠.
음력설보다는 양력설을 지낸다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82년에 호주에 온 안화자 할머니도 그 분들 중 한 분입니다.
안화자(81) 할머니: 저희는 대체적으로 음력설을 안 하고 양력으로 했어요. 우리 어른들이 그래서 그냥 한국식으로 조상 섬기고 이런 걸 안 했으니까. 우리 집은 더군다나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이니까 왜 안 했는지 난 몰라요. 어렸을 때는 음력설에는 우리나라는 뭐 더러 이렇게 모여서 놀이도 하고 뭐 널도 뛰고 뭐 다 그러지 않았어요.
고국을 떠난 지가 너무 오래 돼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시다는 조화숙 할머니…
조화숙(87) 할머니: 이제는 내 나이가 36년생으로 돼 있어도 원래 나이는 34년생이거든, 그래서 90이니까 이게 생각이 안 나지 이젠.
1981년에 호주에 오신 김경림 할머니도 고국에서 설에 가족과 함께 지냈던 시간에 젖어봅니다.
김경림(83) 할머니: 한국에서는 명절 때면 그냥 가족이 다 모여서 송편도 만들고 이렇게 즐겁게…그때 아무리 못 살아도 명절 때는 떡을 해먹고 그랬으니까.
73년에 호주에 왔다는 김정엽 할아버지, 50여 년을 호주에서 보내신 김정엽 할아버지는 한인으로서는 서너 번째로 가장 먼저 호주 땅을 밟지 않았나 생각하신다는데요.
김정엽(82) 할아버지: 설을 뭐 어렸을 때 뭐 세배하러 가면 엿도 주고 그러니까 많이 기다려지죠, 설이. 재밌게 지냈죠.
힘들었던 시절…새해에는 풍성해지길 기원하며 어머니들은 설이면 정성을 가득 담아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생각에 정작 당신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하시곤 하셨는데요,
호주에 온 지 어느덧 40년가량 된 우리 어르신들도 설날에는 꼭 떡국을 드신다고 합니다. 조화숙 할머니…이제는 큰 며느리의 손맛에 맡긴다고 하시네요.
조화숙(87) 할머니: 천상 이번에도 큰 며느리가 뭐 그냥 떡국 끓였더라고 만두 빚어서 넣고 떡국 끓여서 그거 먹고 그러고 말았지 뭐. 그래서 우리 큰아들네 집에서 나만 가서 먹고 왔어. 나 혼자 사니까,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할아버지와 두 분이 오손도손 사신다는 양재숙 할머니의 떡국 맛의 비결은 손수 끓여낸 사골 육수! 하지만 아픈 남편을 돌보느라 지금은 직접 만들기 힘들다고 합니다.
양재숙(87) 할머니: 저희도 이제 우리 아이들 아버지하고 둘이서 살거든요. 떡국 끓이죠. 사골 국물 내가지고…그런데 이제 해마다 제가 했는데 올해는 제가 힘들어서 못 해요. 우리 아이들 아버지가 치매 환자니까 환자를 돌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굉장히 피곤한 일이거든요. 화도 잔득 내지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서… 좀 너무 그렇습니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그 시절 그 아이가 된 듯 장난기 어린 표정이 되신 김응환 할아버지.
김응환(89)할아버지: 떡을 해서 먹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옆집에서 갖다 주는 것을 먹으면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설이 내일이다 하면은 밤에 잠을 못 잤어요. 내일이면 설날이 돼서 많은 음식, 떡, 송편 이런 것을 먹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항상 먹고 싶은 것을 먹으니까. 내 경우는 못 살 때니까 많이 먹을 수가 없었잖아요. 설날이 아니면 먹을 날이 없었어요. 그래서 많이 기대가 되었죠.
김응환 할아버지와 김경림 할머니 부부는 자녀들이 다 호주에 있어서 설이면 모두 모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합니다.
김경림(83) 할머니: 호주에서 음력 명절을 잘 안 쇠요. 우리는 저기 양력 명절을 많이 쇠요. 항상 그 양력에는 같이 가족이, 해서 먹지는 못해도 떡을 사다가 이제 같이 아이들하고 같이. 그러니까 아들이 지금 손주가 9명이고 우리 자녀가 5명이에요. 그러니까 모이면 집으로 하나야, 그냥 가득 차요. 그러면 이 양반(김응환∙89) 좋아하지 아이들 모이니까 애들 맨날 안 오고…이 양반이 벌써 한 거의 10년 됐어, 알츠하이머라고…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것이 고국에서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강안나 할머니는 고국에서와 가장 큰 차이는 쓸쓸함이라고 하십니다.
강안나 (87) 할머니: 다르지 왜냐하면 여기서는 쓸쓸하잖아. 친척이 없고 하니까, 우선 쓸쓸한 게 무엇보다도 제일 많이 다르고. 애들이랑 모여서 그날은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새로 옷을 만들어 주시니까 그날은 새 옷도 입고, 세배 드리고 그랬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건 전혀 못 느끼니까, 그런 게 많이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요란하잖아. 구정이라고 하면은 그래도 뭐 윷놀이도 하고, 또 널 뛰고 뭐 밖에 나가서 애들이 새 옷들 입으면 누구 옷이 더 이쁜가 자랑하고 막 그랬는데, 요즘 그런 건 전혀 없잖아요.
고국에서는 특히 설날이면 형제, 자매, 친척들이 모두모두 모여 북적북적하게 보냈었기 때문일까요? 눈가가 촉촉해지건…
안화자(81) 할머니: 오래됐어도 저는 주위에 아이들이 없어요. 다 기르지를 못해서. 그냥 뭐…우리 형제가 하나 있으니까 그 동생하고 그냥 뭐 우리 한국식으로 음력설에는 뭐 떡국이나 나눠 먹고 그 정도지 뭐.
강안나 (87) 할머니: 꼭 한다는 거는 나는 특별하게 없고 뭐 항상 하는 것이 그저 설날 떡국 먹는 것뿐이지, 특별하게 뭐 없어요.
조화숙(87) 할머니: 이제 내가 나이가 먹으니까 하나는 뭐 디와이 살고 하나는 스트라스필드 살고 아들만 둘인데, 내가 할 때는 항상들 잘 모였는데 이제는 둘이 떨어져서 사니까 그렇게 잘 모이지를 않더라고.
박용수(73) 할아버지: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요. 낚시를 제가 아주 즐겨요. 그래 인자 바닷가에 집이 한 채 있는데 거기에 간혹 가서 낚시하고 해안에 걷고 그렇습니다.
73년부터 호주에 와서 50여 년을 이 곳에서 사셨다는 김정엽 할아버지는 호주에서는 고국에서의 설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서인지 설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김정엽(82) 할아버지: 어…기분 안 나요, 여기서는 설 기분이 별로 안 나요. 주위 분위기가 그래가지고, 그냥 호주 사람 돼버리는 거죠. 그때 이제 가족들 모여서 즐기니까 만나고 얘기하고 옛날 얘기들 하고, 근데 여기는 뭐 그런 걸 느낄 수가 없죠. 주위 분위기가 아니니까…별로 어렸을 때는 뭐 그냥 기대가 많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까 별 설이라고 흥분되거나 그런 게 없어요. 별로에요, 그냥. 뭐 가족은…난 혼자 사니까, 가족은 전부 한국에 있고. 나는 혼자 살게 잘 훈련이 돼 가지고 별 감정이 없어요.
2024 LNY_Day care program for Korean elders
19 Jan 2024, 3: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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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여정, 힘든 순간에 우리를 늘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 가족일 겁니다. 설날은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데요,
가족이 모두 호주에 있다는 김응환 할아버지는 함께 있을 때 음식 맛도 배가 된다고 합니다.
김응환(89) 할아버지: 한국 사람끼리 만나면 똑같고 그렇지 않고 내가 혼자 할 때는 조금 다르죠. 좀 맛이 없다고 생각할까! 옛날 맛이 안 나겠지 뭐… 두 사람이 먹을 때는 맛이 없고, 전 가족 아이들이랑 같이 먹을 때는 맛이 아주 좋아요.
양재숙 할머니는 자주 모여 이야기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 주는 큰 행복이라고 하는데요,
양재숙(87) 할머니: 그냥 모여가지고 막 오랜만에…이제 다 바쁘니까. 뭐 장가 가고, 아기 낳으면 아기 놓고, 아기 돌이라고 하고 뭐 자주 모임을 가지잖아요. 모여 가지고 오빠도 볼 수 있고, 언니도 볼 수 있고, 자주 모임을 가지니까 너무 행복하다 그러거든요. 우애 있게 막 서로가 참 잘하니까 너무 보기가 좋고 감사해요.
설이면 가족이 모일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는 김경림 할머니는 어느덧 큰 며느리가 당신이 이민 왔을 때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고 합니다.
김경림(83) 할머니: 아 좋죠. 애들이 이제 그래도 여기서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까 자주는 못 만나잖아요. 그러면 가끔 만나는데 명절에는 그 가족이 싹 다 모이거든, 애가 크고 작고 다 같이 모이니까. 큰 며느리가 저기 다 차려가지고 우리 큰며느리가 지금 58세야. 큰아들은 지금 60세고.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이젠 성장해 가지고 우리 이민올 때보다도 더 나이가 먹었어. 그러니까 이젠 우리가 할 게 없어.
한국에 뿌리를 둔 이민자 어르신들은 한국의 전통이 호주 한인 사회에서도 계속 이어지기를 한마음으로 바라셨는데요, 조화숙 할머니는 하지만 전통이 지켜지기는 힘든 것 같아 보인다고 합니다.
조화숙(87) 할머니: 한국의 전통 같은 거 지켜줄 수는 잘 없지, 없어. 그리고 그 때만 해도 애들이 어리고 장가를 안 갔기 때문에, 여기 와서 다 장가를 가고 이제 그랬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냥 뭐 친척이라는 거는 어머니 아버지밖에 없고, 이제 동생들도 그 때는 결혼도 안 하고 그랬대서 별로 심통하지를 않은 것 같아.
김경림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이 전통 민속 놀이에 관심을 잃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며, 한국에 뿌리를 둔 만큼 전통과 풍속을 지키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 하십니다.
김경림(83) 할머니: 전에는 우리 윷도 갖다 놓고 뭐 화투도 갖다 놓고 그래가지고 아이들하고 민화투도 치고 윷도 하고 그랬는데, 점점점점 언젠가는 윷을 안 두게 되더라고 애들도, 윷도 안 둔 것 같애, 올해는. 마음이 아프죠, 약간. 근데 그 옛날에 하던 생각…우리는 노인네들은 기억이 나는데 애들은 조금씩 잊어버려 가는 것 같아. 우리는 뿌리가 한국이잖아. 그러니까 한국 사람으로서 지키던 걸 지키고 싶지. 우리는 그렇지. 그런데 아이들은 자라는 아이들은 다르겠지 우리하고. 노인네들 우리는 다 거기서 성장해서 우리는 가족 이루다 온 사람 아니야 한국에서, 그러니까 한국 풍속이 그대로 남아있지, 어딘가 모르게 다 남아있지. 근데 그게 잘 되지가 않지. 우리는 한국이 뿌리니까, 한국 사람이니까.
군 제대하고 바로 86년에 호주로 왔다는 박용수 할아버지는 광산 일을 많이 하면서 여러 곳의 광산에 다니다 보니 호주에서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하는데요,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점차 사라지는 게 아쉬우셨을까요?
박용수(73) 할아버지: 한국 같으면 어른들 애들 이렇게 해서 그 예의가 있지만, 여기도 예의는 있지만 뚜렷하니 이렇게 그러니까 직각나는 그런 거는 없어요. 뭐라고 그럴까, 부모하고 자식 간에 그 보이지 않지만 그 율 있잖아요. 부모나 형제 간에 그 보이지 않는 존경심이라든가 뭐 이런데…근데 여기는 그런 율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호주에 오신 지 40년이 넘었다는 양재숙 할머니는 세배하는 전통은 꼭 지킨다고 합니다.
양재숙(87) 할머니: 음력설 날 되면 아이들 다 와갖고 세배해요. 우리 한국, 그래도 옛날 문화를 안 잊어버리기 위해서 세배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세뱃돈을 주고, 우리 아들이니까 어른들도 세배하면 세뱃돈 우리가 주고…
강안나 할머니는 고국을 떠나 호주에서 새 삶의 터전을 마련했더라도 우리의 전통과 풍속을 이어가 달라는 말씀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강안나(87) 할머니: 우리 고유 명절이고 또 한국 사람들이니까 한국의 풍속을 잊지 않고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오랜 세월을 거쳐 쌓인 지혜와 진심을 담아 따뜻한 덕담 남겨주셨습니다.
2024 LNY_Message from Korean elders
19 Jan 2024, 3:03 pm
2024 LNY_Message from Korean el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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