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IN: 크리스마스 박싱데이(Boxing Day) 어디까지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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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사람들에게 줄 선물 상자 포장에서 비롯된 박싱데이는 오늘날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데이로 바뀌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시드니 호바트 요트 레이스’는 매년 12월 26일 박싱데이에 출항을 알리며, 영국에서는 박싱데이에 EPL 축구경기가 열린다.

크리스마스 장식의 반짝이는 전구를 보며 사람들은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사랑과 감사의 의미를 떠올립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호주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을 박싱데이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는데요. 영국에서 시작된 박싱데이는 본래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고, 오늘날 박싱데이는 어떻게 변모했는지, 박싱데이의 여러 궁금증을 풀어봅니다.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나혜인 PD (진행자): 롤러코스터를 타는 올여름 호주 기온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물씬한데요. 거리에는 대형 트리, 쇼핑센터 등에는 아이를 달래주는 산타 할아버지가 등장하고요.

유화정 PD: 호주의 한 여름에 맞는 크리스마스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전 세계 미디어의 이목이 집중되곤 합니다. 어느 외신은 “호주의 산타는 반바지를 입고 등장한다’’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반바지 입은 산타를 보진 못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호주 마켓에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붉은색을 띤 체리가 등장합니다. 호주의 여름 체리 시즌과 크리스마스가 일치한다는 것은 행복한 우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호주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건 역시 도심 거리와 주요 쇼핑센터 등에 세워지는 대형 트리입니다.

진행자: 시드니의 경우 시드니 도심 마틴 플레이스(Martin Place)에 대형 트리가 매년 크리스마스의 상징처럼 등장하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신선하고 신기한 볼거리가 되는데요.  

유화정 PD: 마틴 플레이스의 성탄 트리는 점등은 지난 1971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시드니 시티 카운슬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Remembrance Day인 11월 11일을 보낸 뒤, 마틴 플레이스에 성탄 트리 작업을 시작하는데, 24미터의 높이에 달하는 초대형 트리입니다. 이 대형 성탄 트리는 지상에서 모든 제작을 마친 뒤 크레인을 이용해 설치되기까지 꼬박 한 주 이상이 소요됩니다.

초대형 트리에는 뱅시아(banksia), 와라타(waratah), 캥거루 포우(kangaroo paw), 와틀(wattle) 등 9종의 토착 꽃 1만 5,000송이가 꽂아지고, 800여 개가 넘는 플라스틱 나뭇가지에는 11만 개의 LED 조명이 화려한 빛을 발산합니다. 여기에 330개의 반짝이는 전통 성탄 방울 장식이 더해집니다. 올해 트리 점등식에는 클로버 무어 시장이 크리스마스 엘프(Elf)들과 함께 산타 썰매를 타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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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플레이스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 클로버 무어 시장이 크리스마스 엘프들과 함께 산타 썰매를 타고 등장 Credit: city of sydney

진행자: 크리스마스 트리 라이트 쇼가 연말에 걸쳐 매일 저녁 열린다고요?  

유화정 PD: 마틴 플레이스의 성탄 트리는 전통적으로 매년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기해 점등되고 있고요. 라이트 쇼는 밤에 봐야 그 진가를 볼 수 있죠. 마틴 플레이스의 성탄 트리는 매일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15분 간격으로 크리스마스 사운드 전통 캐롤 등과 함께 펼쳐집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새해 첫날까지 이어지니까요. 가족과 함께 들러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인근 거리의 피트 스트리트 몰(Pitt Street Mall)에도 크리스마스 조명 캐노피가 장식돼 도심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으며 연말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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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Place Christmas market /credit-City-of-Sydney-Chris-Southwood

진행자: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하나이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념하고 즐기는 전통은 민족과 문화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갖고 있죠. 호주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을 박싱데이(Boxing Day)로 기념하고 있는데, 박싱데이는 어떤 날이고 어떻게 시작됐는지 먼저 유래부터 살펴볼까요?

유화정 PD: 박싱데이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래는 중세시대 왕과 귀족들이 크리스마스 다음날 남은 음식과 물건들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관습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영국을 비롯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대표 영연방 국가와 일부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다음날을 박싱데이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는데요. 박싱데이란 이름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 부유한 귀족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상자에 넣는 전통에서 비롯했습니다.

그 시대 귀족의 하인들은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야 귀족들로부터 받는 휴일 보너스로 하루를 쉴 수 있었습니다. 이때 크리스마스에 남은 음식과 선물 등을 상자에 가득 담아가도록 배려해, 하인들은 하루를 쉬며 가족들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 교회에선 성탄절 박스에 모인 헌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박싱데이에 의미를 더했습니다.

진행자: 오늘날의 박싱데이를 기념하는 방식은 많이 바뀐 모습인데요.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용한 가족 모임이 늘고 있고,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쇼핑데이로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유화정 PD: 11월 블랙 프라이데이와 함께 크리스마스 다음날 박싱데이 쇼핑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지 오래죠. 쇼핑업체들이 일 년 중 최대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기 때문인데, 상점들이 박싱데이에 할인을 하는 이유는 한 해의 마지막 세일을 통해서 재고를 처분하고 새해 상품을 위한 자리 마련입니다.

시즌이 끝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들 주로 전자제품이나 올해 유행했던 옷등의 상품 할인율이 가장 높은 편인데요. 특히 가전제품의 인기가 많습니다.

Boxing Day

Boxing Day Credit: businessinsider

박싱데이 당일은 평소 점잖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돌변할 수 있구나를 볼 수 있을 만큼 실제로 물건을 서로 사려고 몸싸움이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데요. 간단히 팁을 드리자면 박싱데이 전에 미리 맘에 드는 옷을 찾아보고 사이즈를 확인하는 것, 사야 하는 물건 중 정말 인기가 있을 상품부터 조금 천천히 구매해도 되는 상품까지 리스트를 정해 순서에 맞게 도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행자: 박싱데이는 쇼핑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즐기는 날로 큰 의미를 갖고 있는데, 호주 시드니에서는 매년 12월 26일을 기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드니 – 호바트 요트 레이스’가 출항을 알리죠?

유화정 PD: 시드니 투 호바트(Sydney to Hobart) 요트 대회는 크리스마스 직후인 12월 26일 박싱데이부터 12월 30일까지 펼쳐집니다. 해마다 12월 26일 박싱데이가 되면 시드니 항에는 수십 대의 요트가 정열해 숨 막히는 ‘시드니 호바트 요트 대회’ 출발을 준비하는데, 매년 12월 26일 오후 1시에 출항이 시작됩니다.

올해로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시드니- 호바트 요트 레이스는 세계 3대 요트 대회로 꼽힙니다. 롤렉스 시드니 호바트 요트대회로 불리기도 하는데, 세계적인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롤렉스(Rolex)가 후원하는 대회이기 때문이죠.

2016 년과 2017년에는 한국팀 소닉(SONIC)이 대회사상 첫 한국팀으로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당시 소닉 팀을 한국어 프로그램이 직접 인터뷰했었죠.

진행자: 요트 경기는 스타디움과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관중들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이점이 있겠는데, 실제 시드니 투 호바트는 백만 관중을 자랑한다고요?  

2013 Sydney to Hobart

ahead of/during the 2013 Sydney to Hobart on Sydney Harbour on December 26, 2012 in Sydney, Australia. Source: Getty / Getty Images AsiaPac

유화정 PD: 주최 측은 ‘세상에서 가장 관중이 많은 경기’라고 주장합니다. 주최 측에 따르면 관중들은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시드니 항구부터 해변을 따라 경기를 관람하는데, 약 70만 명에 달하고, 이 중 30만 명은 선상에서 요트 경기를 즐깁니다.

선상 관중들에게 음식과 연료를 공급하는 배를 포함해 100척이 넘는 배가 시드니 항구를 가득 메워 장관이 연출되기도 하는데요. 겨울 한가운데에 있는 북반구의 국가들이 TV를 통해 태양이 이글거리는 시드니의 요트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연휴의 별미로 꼽히고 있습니다.

진행자: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호주, 시드니에서는 세계적인 요트 레이스 대회 시드니 투 호바트 서막을 알리고, 한편 멜버른에서는 크리켓 매치가 박싱데이 연례행사로 이어져오고 있죠?

유화정 PD: 이른바 박싱데이 테스트 (Boxing Day TesT) 매치로 불리는 경기인데요. 1950년대부터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박싱데이를 기해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MCG)에서 열립니다.

Australia won Boxing Day Test Match against New Zealand by 247 runs

Source: Getty / Getty Images

크리켓은 테니스, 요트 경기와 함께 호주 여름의 대표적인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로 세계 스포츠 애호가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데요. 특히 크리켓은 요트나 테니스에 비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호주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Boxing Day Test는 호주 크리켓 팬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연휴의 일환으로 기대되는 중요한 행사 중 하나입니다.

진행자: 한국의 예전 기억을 떠올리면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방영이 연말 최고의 선물로 기억되는데요. 호주의 여름 크리스마스는 국민 스포츠와 함께 즐기게 되네요. 계속해서 영국의 경우도 살펴보죠.

유화정 PD: 박싱데이는 영국민의 전통적인 휴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빅토리아 시대에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귀족들이 하인들에게 하루의 휴가 보너스와 함께 선물 상자를 주는 관례가 정착되면서 박싱데이라는 용어가 사용됐고, 이후 박싱데이는 1871년 영국의 국경일로 지정돼 공식적인 휴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때부터 크리스마스 연휴는 영국 사람들에게 최대 이벤트 중 하나가 됐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행사가 열렸는데, ‘아마추어리즘’에서 출발한 축구대회가 그 대표 행사였습니다. 영국 ‘BBC’는 이에 대해 “주거 환경이 불편하고 매력적이지 않았던 서민들에게 휴일은 집에서 쉬는 날이 아닌, 거리로 나서는 이유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영국문화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축구인데, 크리스마스 연휴에 노동자 계급을 위한 전통 행사가 축구였다니 역시 축구 종주국 답네요. 

유화정 PD: 크리스마스에 진행된 최초의 리그 경기는 1989년에 열렸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와 박싱데이에도 경기가 진행돼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축구 경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크리스마스 경기는 사라져 갔는데, 크리스마스가 기차와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들도 쉴 수 있는 날로 규정되면서 대중교통편이 줄어든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아직도 박싱데이에는 프리미어리그 (EPL)를 비롯한 영국의 리그 경기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곳곳에서 열리고 있어, 연휴에 노동자들에게 축구의 기쁨을 선사하던 영국 축구의 관습은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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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dition of Boxing Day Football in UK Source: AAP

진행자: 유럽 대부분의 축구 리그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휴식을 취하는데,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EPL (English Premier League)은 유럽 4대 주요 리그 가운데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에도 축구를 하는 유일한 나라인 거죠?

유화정 PD: 그래서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영국의 박싱데이가 ‘빡센데이’로 불린다고 합니다. 어찌 됐든 ‘EPL 박싱데이(Boxing day)’는 전 세계 축구 마니아들에겐 마치 성탄절 선물과도 같습니다.

EPL에서 뛴 코리안리거들도 박싱데이와 인연이 깊은데요, “코리안리거”는 “Korean tiger”의 줄임말로 한국 선수들의 파워풀하고 격렬한 플레이를 극찬하는 표현이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낸 박지성은 ‘박싱데이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단골 선수였습니다.

토트넘의 손흥민도 박싱데이에 공격포인트를 많이 쌓으며 인기를 더했는데요. 손흥민 선수의 경우, 손흥민과 산타클로스를 합성한 ‘손타클로스’라는 애칭 붙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호주의 크리스마스 연휴 박싱데이를 맞아 박싱데이의 원래 의미와 오늘날 박싱데이는 어떻게 변모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