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에도 한국인이 호주에?”… ‘호주 한인 이민 역사’ 연구, 송지영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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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에도 한국인이 호주에?”… ‘호주 한인 이민 역사’ 연구, 송지영 교수 인터뷰

멜버른 대학교 송지영 교수와 함께 약 150년 전에 호주에 온 존 코리아의 발자취를 되짚어 봅니다. 송 교수는 과거에 대한 상상력과 이주를 통한 인류의 진화를 생각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박성일 PD(이하 사회자): 호주에 도착한 최초의 한국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약 150년 전에 호주에 처음으로 도착한 존 코리아의 이야기, 최근 에스비에스 한국어 프로그램 기고문을 통해 발표가 됐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 나눠봅니다. 멜버른 대학교 송지영 교수,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송지영 교수: 안녕하세요.

사회자: 네 반갑습니다. 기고문을 보면 호주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올해 초부터 ‘호주 한인 이민 역사’를 연구하던 중에, 19세기 말 호주에 도착한 초기 한인 이민자들을 발굴하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먼저 이번에 ‘호주 한인 이민 역사’를 연구하시게 된 계기, 무엇인지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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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영 교수: 제가 지난 10여 년간 연구 분야가 주로 탈북민, 동아시아 난민, 재호주 아시아인들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국인이다 보니까 당연히 재호 한인에 관심이 있었고요. 기존 연구를 보니까 초기 19세기 말~ 20세기 초 호주에 정착했던 중국인 광부라든지 일본인 잠수부에 대한 연구는 조금 있기는 한데, 한인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더라고요. 그래서 역사학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가 좀 무식하게 도전을 해서 연구팀을 꾸리고 조교들하고 같이 호주의 고문서들을 뒤져서 초기 한인 이주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 그렇군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을 연구하는 중에 1876년이죠? 무려 150여 년 전인데요. 로키엘호라는 배를 타고 호주에 도착한 존 코리아에 대한 자료를 찾으셨어요. 존 코리아라는 분의 존재, 처음에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송지영 교수: 네, 연구 시작 한 달 만에 존 코리아를 찾았어요. 사실 저는 검색어하고 데이터베이스만 주고, 조교들한테 지시를 한 것이고요. 제 조교인 사실 루이스 펜서라는 친구가 존 코웨이를 찾았는데 처음에 찾았을 때 너무 놀랍고 기뻐서 저하고 둘이 손을 잡고 방방 뛰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이 분이 Native Corea라고 고문서에 나오는데 Corea라는 지역이 이탈리아에도 있고, 이탈리아 성에도 꼬레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존 코리아가 한인인지 이탈리아인인지 결정적인 증거를 더 찾아야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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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네, 그렇다면 존 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보죠. 존 코리아의 귀화 자료를 소개해 주셨는데요. 이 자료를 보면 존 코리아는 어떤 사람인가요?

송지영 교수: 존 코리아는 1876년에 호주에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로키엘호 라는 배를 타고 들어왔고요. 그로부터 18년 후인 1894년에 뉴사우스웨일스 굉장히 시골 마을인 골골이라는 곳에서 귀화를 해요. 그때 당시 나이가 35세였고 그 지역에서 양털 깎기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 사이에 긴 시간이 있었는데 뉴사우스웨일스 브로큰힐 근방에 실버턴에서 광산권을 신청하고 기다리기도 했고, 양털 깎기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1894년에 귀하한 바로 다음 해인 1895년에 서호주 쿨가디라는 광산 마을에서 또 광산권을 신청을 했는데 거절을 당합니다. 그 이유는 이분이 뉴사우스웨일스에서 귀화를 했기 때문에 서호주에서 금광을 캘 수 없다는 그런 이유였어요. 그래서 이때가 호주 연방정부 설립 이전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 존재했던 지역주의가 굉장히 강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존은 포기하지를 않고 브로큰힐에서도 한참 북쪽에 있는 화트이클리프라는 마을에서 광산권을 또다시 시도를 하고 그때는 허가를 받아서 돈을 모았던 것 같아요.

기고문에서도 나와 있지만 존이 동료들하고 축구장에도 가고 광산권도 같이 신청하는 등 호주 사회와 문화에 매우 잘 적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축구장에 갔다가 수표를 잃어버린 그러한 사건이 지역 신문에 나기도 하는데요. 정말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귀화하고 30년 후에 65세에 존 코리아가 폐렴으로 사망을 하는데요. 사망 전 말년 5년은 병 치료를 위해서 남호주 애들레이드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었고요. 그때 1920년 병원 기록을 보니까 출생지가 일본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그때 존이 한인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발견한 것이고요. 존이 떠날 때 당시에는 한국이 조선시대였고 호주에 도착한 1876년은 사실 고종 13년으로 한국이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은 해이기도 해요.

존이 사망한 1924년은 당시 이미 조선이 국권을 잃고 일체 치아에 있었던 굉장히 암울했던 시기였죠. 존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혼자서 생을 마감했어요. 추측할 수는 있지만 분명 그때 백호주의라든지 이런 것의 영향으로 인종 차별도 있었을 것 같고요

당시 벤디고에 있던 중국인 간부들도 많았는데 그들하고는 잘 어울린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말년에 혼자 떠나고 이랬던 스토리들이 짠하고 슬프긴 한데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150년 전 호주 땅을 먼저 밟은 선배 재호 한인으로서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사회자: 그렇군요. 150년 전에 한국 분이 여기 와서 귀화를 했다는 내용 굉장히 좀 흥미로운 내용인 것 같아요. 존 코리아의 발견은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뿐만 아니라 호주 역사학계에서도 획기적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송지영 교수: 그게 아직까지 한 번도 밝혀지지 않은 19세기 말  재호 한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호주 역사학계라든지 아시아학 이민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굉장히 많은 관심들을 보이고 계세요. 최초라서 그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보고요.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네요.

사회자: 네, 존 코리아를 발견한 송지영 교수님, 이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호주 아웃백을 혼자서 차를 몰고 3주간 무려 4,000킬로미터가량을 자료 수집을 위해 떠납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발견한 내용, 소개를 해 주시죠

송지영 교수: 제가 호주에 온 지 6년이 되었는데 아웃백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존 때문에 제가 골골이라는 시골 마을부터 시작해서 브로큰힐, 실버턴 그다음에 초기 아시아 이민자들이 좀 있었던 웬트월스라든지 밀두라, 벤디고 이런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지역에 있는 지역사 연구자들이라든지, 묘지 관리인까지 굉장히 많은 분들을 만났어요. 그래서 이민자로서 시드니나 멜번 같은 도시에만 있다 보니까 몰랐는데 이번에 아웃백을 3주 동안 돌아다니면서 진짜 호주 뭔가 호주의 민낯을 본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아웃백이나 지방 도시를 많이 방문을 하면서 초기라든지 현재까지 아시아 이민자 연구들을 꾸준히 앞으로 해볼 생각이에요.

사회자: 그렇군요. 정말 엄청난 연구가 아닐 수 없는데요. 지난 몇 달간의 여행을 통해서 그리고 존 코리아를 통해서 송 교수님이 가장 많이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송지영 교수:  사람들의 국가간 이동이 결국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그런 사실을 많이 깨달았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저나 PD님은 91년 이후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난 후에 우리가 굉장히 자유롭게 다른 나라를 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 사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인간이 이동했던 건 이미 지난 수백 년 수천 년뿐만이 아니라 수만 년까지 있어왔잖아요. 근데 1948년 유럽의 웨스트팔리안 시스템 때문에 국가라든지 국경, 주권의 개념이 생기면서 국가 간 평화도 생기긴 했지만 동시에 개인의 이동을 국가가 간섭하기 시작한 거고요. 국가의 허락을 받고 다른 나라에 갈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이동의 자유, 새로운 곳에서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개인의 인지 능력이 얼마나 확대되고 또 진화되는지 여행 기간 동안 이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거창하긴 한데 사회과학 쪽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이런 과거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이주를 통한 인류의 진화 이런 것까지 생각해 보는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모르는 게 정말 너무나 많습니다.

사회자: 네, 알겠습니다. 자 이제 다음 연구 내용이 궁금해지는데요. 존 코리아 외에도 또 다른 호주 한인의 이민 역사를 연구하고 계실 텐데요.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 저희가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송지영: 존 코리아하고 관련된 역사적 자료는 앞으로도 계속 찾을 거고요. 이제 지금 시작을 한 거고 끝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다음 프로젝트로는 20세기 초 한국의 일제시대 때 호주에서 교육이라든지 연수, 단기 방문을 했던 어떻게 보면 최초의 한인 유학생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쪽 부분을 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자료를 찾다 보니까 1920년~ 23년 사이에 멜버른 스카치 칼리지랑 멜버른 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마산 창신학교 교사 김호열 선생님이 계셨어요.

또 나중에 여성 독립운동가가 된 양한나 선생님도 멜번에 단기 연수라든지 방문을 하셨던 걸로 자료가 나오고 있고요. 이 부분은 이미 양명득 목사님께서 한국어로 연구를 해 놓으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추가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20년대, 30년대 한 10명가량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의 초청으로 호주를 방문했던 한인분들이 계시는데요. 그분들을 연구하는 것이 지금 다음 프로젝트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발표될 호주 한인 이민 역사에 대한 연구 내용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연구를 이끌어 주신 점 청취자 여러분을 대신해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고요. 후속 연구 내용이 발표되면 다시 한번 모시고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네, 멜번 대학교 한국학 부교수로 있는 송지영 교수 오늘 자리 함께해 주셨습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송지영: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