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료보험(Medicare) 제도가 침몰하고 있다…?”
호주의 국민의료보험(Medicare) 제도가 40년 만에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건당국과 일선 가정의(GP)들이 바라보는 사태의 진상은 180도 판이하다.
진행자: 어제 저희가 뉴스를 통해 상세히 보도해드린 대로 호주의 메디케어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메디케어 제도의 문제의 불똥이 벌크빌링으로 튀고 있습니다. 환자를 진찰하고 진료한 혜가 진료비를 메디케어 당국에 직접 환급을 신청하는 제도 벌크빌링 상황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호주의 국민의료보험 즉 메디케어 제도에 대해 조은아 프로듀서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30여년 전 까지만 해도 벌크빌링을 하는 GP들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과거로 회귀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조은아 PD: 그렇습니다. 약 30여 년 전까지만해도 환자가 GP를 만나 진찰을 받고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를 내야 했습니다. 진료비를 먼저 납부한 다음에 그 환자는 메디케어 사무실를 방문해 직접 진료비를 환급 받아야 했던 절차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서민층 환자들의 경우 진료비를 먼저 납부할 능력이 없을 경우도 있었고, 진료비가 얼마 정도될 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빈곤층의 경우 제때 GP 진료소를 찾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가 파생됐었던 거죠.
진행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우리의 속담이 떠오르는데요. 결국 GP를 제때 보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았던 건데요… 정부의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벌크빌링 제도는 전국적으로 보편화가 됐는데 지금 현재의 상황은 3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잖습니까.
조은아 PD: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보건 의료계의 공통된 우려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구체적인 현황이 발표됐는데요.
보건진료 안내기관 ‘클린빌'(Cleanbill) 측이 전국의 GP 진료소 6363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신규 환자들에게 벌크빌링을 허용하는 GP는 전국적으로 3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된 겁니다.
전국적으로는 NSW주 GP의 50% 가량이 벌크빌링을 수용하고 있으나 빅토리아 주는 34.6%, 퀸즐랜드 주 26.5%에 그쳤고, ACT와 타즈매니아의 경우 단 5%에서 6.9%의 GP들만 환자들에게 벌크빌링 헤택을 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흥미롭게도 NSW주 뉴카슬의 경우 벌크빌링을 하는 GP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뉴카슬 주민들은 GP 진료소 방문시 진료비를 선불해야 하는 거죠.
뿐만 아니라 시드니의 대표적 부촌 동부지역과 북부 해안지역 동네 GP들도 다수가 벌크빌링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진행자: GP들이 벌크빌링을 기피하는 이유, 살펴보죠.
조은아 PD: 네. 한마디로 의사들에 대한 메디케어 환급액이 실제 진료비에 못 미치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GP들의 진료비에 대한 메디케어 환급액이 동결됐는데, 10년 동안 인건비를 포함 물가가 치솟아 현실적으로 벌크빌링에만 의존할 경우 GP 진료소 운영이 적자라는 볼멘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이로 인해서 벌크빌링을 기피하거나, GP들이 아예 진료를 포기하는 등 GP 부족난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행자: 앞서 다른 의료 기관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조은아 PD: 그렇습니다.
의료전문대학 로열 오스트레일리안 GP 칼리지 측은 최근 4년 동안 전국적으로 가정의 진료소 60곳 이상이 폐업했다고 밝히며 그 원인이 바로 국민의료보험 진료비 환급 문제라고 적시했습니다.
GP 칼리지 측은 GP 진료소 폐업의 핵심 이유는 국민의료보험(Medicare) 차원의 진료비 환급 감액 및 GP 부족난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호주의학협희(AMA) 측도 현재 호주 전국적으로 GP가 860명 가량 부족한 상태이며 최악의 경우 향후 10년 안에 1만명 가량이 부족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진행자: 앞서 언급드린 대로 이러다가는 자칫 GP진료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되면 종합병원 응급실로 직행하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국가적으로 더 큰 부담이 될텐데요.
조은아PD: 그렇습니다. 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건강 문제는 선택이나 연기의 방편으로 생각하면 결국 최악의 응급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데 현재 그런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지적합니다.
일반 가정의 진료를 받지 못하고 병원 응급실로 향하게 되면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된다”는 경고도 함께 말이죠.
진행자: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정부도 메디케어 제도의 난맥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데,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의료계와는 180도 다르잖습니까.
조은아 PD: 평행선을 긋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오히려 메디케어 예산이 줄줄이 새는 폐단이 점입가경이라는 입장입니다.
메디케어 제도 검토위원회(위원장: 보건경제학자 프래딥 필립 박사)가 최근 정부 측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규정 위반 및 편법 등의 행위로 매년 최고 15억 달러에서 최대 30억 달러의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위원회는 이런 맥락에서 “메디케어 제도의 구조적 개혁을 통해 더욱 간편하고 선명한 비용청구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두면서 “대대적 개혁이 신속히 단행되지 않으면 예산 낭비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아주 판이한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진행자: 앞서 호주공영 ABC와 Ch9 취재진은 공동탐사보도를 통해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죠?
조은아 PD: 그렇습니다. 두 매체는 일부 악덕 가정의(GP)와 의료 종사자들이 진료비를 허위 혹은 과다 청구하는 편법을 통해 국민의료보험(메디케어) 예산을 매년 80억 달러나 착복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정부의 대대적인 감사를 촉발시켰던 거죠.
두 매체는 “일부 악덕 의료진이 고인을 대상으로 진료비를 정부 측에 청구하고, 일부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허위로 꾸며 진료비를 과다 청구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앞서 2022년 3월에는 더 가디언 호주판이 “일부 의사와 의료업체가 벌크빌링의 허점을 이용해 과다 환급을 청구하면서 메디케어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검토위원회도 예산 낭비의 핵심 요인으로 진료비 과다 혹은 허위 청구를 지목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제시됐나요?
검토위원회는 총 23가지의 권고사항을 정부 측에 전달했는데요. 향후 정부가 어떤 정책을 제시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