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토지 권리 운동 선구자 ‘유누핑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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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토지 권리 운동 선구자 ‘유누핑구’ 별세

원주민 토지 권리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누핑구가 오늘 아침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원주민 토지 권리 운동의 선구자인 유누핑구(Yunupingu: 74)가 노던 테러토리 북동부 아른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존경받는 욜릉구(Yolngu) 원로이자 구마츠 지도자였던 유누핑구는 오랜 투병 끝에 오늘 아침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1978년 올해의 호주인에 선정된 바 있는 유누핑구는 원주민 토지 권리 운동과 원주민 인권 향상을 위해 한 평생을 바쳤다.

요투윈디(Yothu Yindi) 재단은 성명을 발표하며 “구마츠 지도자 유누핑구의 별세를 애도한다”라고 밝혔다.

재단은 “그의 토템은 불, 바위, 바루(소금물 악어)였고 그의 이름은 시간을 거스르는 신성한 바위라는 뜻을 담고 있다”라며 “신성한 구마츠 땅에서 그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친척들과 재회하기 위해서 자신의 여행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1948년 6월 30일 출생한 유누핑구는 이르카라(Yirrkala)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18킬로미터 떨어진 노던 테러토리 광산마을 누룬바이(Nhulunbuy)에서 자라며 미션 스쿨에서 공부를 했다.

운명이 그에게 손짓을 할 때는 그는 겨우 십대 청소년이었다.

고브 반도에서 알루미늄이 풍부한 바위인 보크사이트가 대량 발견됐고, 호주 정부는 1963년 욜릉구 원주민과 상의도 없이 수백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땅을 매각하고 만다. 채굴권은 나발코라는 회사에 주어졌다.

이때 유누핑구는 원주민 토지 권리 운동을 위한 문서로 평가되는 이르칼라 바크(Yirrkala Bark) 청원서 초안 작성에 앞장선다.

원주민 언어인 욜구 마타와 영어로 쓰여진 이 탄원서는 원주민 땅에 대한 원주민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문서는 호주 의회가 인정한 최초의 전통적인 문서로 호주 법에서 원주민을 인정한 최초의 문서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유누핑구는 1966년 브리즈번에 있는 감리교 성경 대학에서 2년간 공부를 하게 된다.

유누핑구는 2016년 7월에 발간된 에세이에서 퀸즐랜드주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며 “목적을 가지고 브리즈번으로 갔으며 그 목적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미래를 위해서 지식과 교육으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평생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유누핑구는 아버지와 함께 노던 테러토리 법원에서 고브 랜드 인권(Gove land rights) 사례의 통역을 맡게 된다.

1976년에는 연방 의회가 노던 테러토리 토지 권리법을 통과시켰고, 노던 테러토리는 호주 정부가 토지에 대한 원주민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인정한 첫 번째 관할권이 됐다.

이 법에 따라 노던 테러토리 토지의 절반 이상이 전통적인 소유주인 원주민에게 반환됐다.

요투윈디 재단은 유누핑구를 “토지 권리 운동과 원주민 권리를 위한 선구자로 그는 원주민과 토레스해협 군도민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그들을 대변했으며 원주민들을 정당한 장소로 돌려보내기 위해 전국의 지도자들과 힘을 모았다”라고 평가했다.

유누핑구는 1977년 북부 토지 위원회의 초대 의장에 선출돼 카카두 우라늄 광산 설립에 대한 협상에도 참여한다.

한편 유누핑구는 원주민 권리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아 1978년 올해의 호주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유누핑구는 당시 “우리가 마침내 이 나라의 미래를 공유하는 원주민으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유누핑구는 역사적인 마보 고등법원의 결정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여러 정부들과 협상을 이어가기도 했다.

유누핑구는 2004년 노던 테러토리 카운슬 의장 직에서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원주민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앤소니 알바니지 연방 총리가 의회 내 원주민 대변기구 ‘보이스’ 설립에 대한 국민 투표를 발표한 후, 밤 늦게 유누핑구에게 전화를 걸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기사에 사용된 유누핑구의 이름과 사진들은 가족들로부터 사용을 허락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