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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jo Paterson의 잊혀진 ANZAC 역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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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jo Paterson의 잊혀진 ANZAC 역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 중 하나
반조 패터슨과 리차드 하웰
저 : 애니 해밀턴

메인 이미지: 호주 부시 시인 A.B. ‘밴조’ 패터슨. 삽입: 경마병 리차드 하웰 브라이언트(Richard Harwell Bryant) 일병이 웨일러(Waler)를 타고 있으며, 반조 패터슨(Banjo Paterson)이 길들여 훈련시킨 말입니다. 브라이언트는 1918년 시리아 베이루트에서 복무하던 중 3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사진: 호주 전쟁기념관. 모든 사진: 공개 도메인

그들 앞에 놓인 정확한 임무를 위해 길을 찾아 훈련을 받은 이 강인한 호주 말들은 부드럽고 불타는 중동의 모래 속에서 그들의 무리가 사막 언덕 깊숙이 가라앉으면서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의 먼지는 고요하고 타는 듯한 공기 속에서 솟아오르는 기둥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태양은 ‘집에 가세요, 호주인’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이곳은 말이 아닌 낙타를 위한 곳이다.

그것은 100여 년 전인 1917년의 시나이 사막이었습니다.

갈리폴리에서 대피한 후, 안작 군대는 이집트로 다시 보내졌고, 그곳에서 그들은 성지를 해방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통치했습니다. 말과 재회한 경기병은 에뮤 깃털을 휘날리며 사막을 가로질러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세, 아브라함,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에 경외감을 느끼며 군용 성경을 휙휙 넘겨보았습니다.”

퀸즈랜드 출신의 부시맨 그룹은 곧 그 부드러운 모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갈리폴리와 프랑스에서와 같은 참호전을 예상하여 모래가 미끄러져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치킨 와이어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부시들은 그것이 도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곧 30kg의 장비를 갖춘 말과 군대가 이 특이한 ‘사막을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이것이 아기 그리스도가 살인적인 헤롯 왕을 피하고 이집트에서 돌아오면서 택했던 길이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들은 군용 성경을 휙휙 넘기며 자신들이 모세, 아브라함,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에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호주인들도 충실한 웨일러를 타고 역사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큰 말들은 호주에서 군대로 수송되어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 모였습니다. 모든 농부는 전쟁을 위해 말 한 마리를 기부해야 했고, 말을 길들이는 사람들은 배워야 했기 때문에 그 말은 최고의 짐승이 아니었습니다.

Banjo Paterson이 Lighthorsemens의 성공을 도운 방법
1915년 NSW주 홀스워시에서 훈련 중인 제12 경기병 연대
위: 1915년 NSW주 홀스워시에서 훈련 중인 제12 경기병 연대. 사진: Sydney Mail

유명한 ‘야생 수풀 말’인 들짐승뿐만 아니라 농부의 잔소리와 가끔 괜찮은 조랑말을 공격하는 말 파괴자 팀을 이끄는 사람은 시로 영어권 세계 전역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AB ‘Banjo’ Paterson , 그의 작품인 The Man From Snowy River와 Waltzing Matilda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십대들이 현역 복무에 등록하기 위해 나이에 몇 살을 더한 반면, Banjo는 그의 나이에서 한 두 살을 빼었습니다.

그는 플랑드르의 서부 전선에 기자로 파견되기를 희망하면서 런던으로 갔지만 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구급차를 몰았으나 중동에서 호주 재마운트 전대가 편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917년 10월 31일 베르셰바에서 유명한 경마 돌격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이 세계적 수준의 조련사의 무대 뒤에서의 노력이었습니다.”

호주 제국군에 임관한 그는 결국 이집트의 모아스카(Moascar)로 파견되어 벅점퍼, 서커스 공연자, ​​편제사, 수의사 등 잡다한 무리를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수천 마리의 말과 노새를 길들이고, 신을 신으며, 먹이를 주고, 손질하고, 경주하고, 전투 상황에 맞게 훈련하고, 일반 최전선 병사를 위해 최고의 것을 보관했습니다. 패터슨이 지적했듯이, 이는 최고의 탈것을 확보하려는 장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습니다.

1917년 10월 31일 베르셰바에서 유명한 경마 돌격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이 세계적 수준의 조련사의 무대 뒤에서의 노력이었습니다. 한 기병이 전형적인 간결한 호주 스타일로 재치있게 말했지만, 돌격의 성공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대의 영웅적 행위가 있었지만 일단 물 냄새를 맡은 후에는 필사적으로 목마른 말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해방의 시작은 단일한 책임이 아니라 여러 부대가 함께 협력하여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다녔던 안작(Anzacs)
제3 경기마 연대와 호주 경기병대
위: (왼쪽) 팔레스타인의 제3 경기병 연대, AIF, 배경에 베들레헴, 1918/19. 사진: 호주 전쟁기념관. (오른쪽) 1914년 11월 호주를 떠나기 전 웨일러를 타고 있는 호주 경기병. 선두에 선 제1 경기병 연대의 William Harry Rankin Woods 기병은 갈리폴리에서 사망한 최초의 경기병 중 한 명이었으며 5월 15일 부상으로 사망했습니다. , 1915. 사진 : AWM.

그만큼 Anzacs는 성서 역사에 강하게 등장하는 브엘세바의 우물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카키색 신약성서인 ‘On Active Service(현역 복무 중)’가 호주군에 발행되었습니다. 해군과 공군을 위해 두 가지 다른 파란색 색상으로 출시되었습니다. 백만 장 이상의 사본이 셔츠 주머니에 넣어 전쟁에 나갔습니다.

‘반조’는 성경에 낯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로즈는 성경과 밤 기도가 가족의 가장 강력한 동반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성경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모든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어떻게 강조하는지 자녀들이 이해하기를 매우 원했습니다.

Banjo Paterson은 왜 Lighthorse에 관한 시를 쓰지 않았습니까?
요단강을 도하하는 호주 제5 경기마 연대
위: 1918년 4월 고라니예에서 예루살렘과 모압 사이의 부교에서 요르단 강을 건너는 제5 호주 경기마 연대. 사진: 호주 전쟁 기념관.

‘밴조’ 패터슨은 10달러 지폐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Anzac 대대에서의 그의 역할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신비롭게도 그가 훈련시키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위대한 웨일스 사람들에 대한 시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그가 그랬다면 그 글 중 어느 것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말 한 마리만 남기고 모두 남겨두기로 결정한 후 그들의 충성심과 신실함을 기념하기에는 너무 가슴 아프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많은 호주인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를 남겨두고 떠나야 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반조’는 전쟁 중에도 몇몇 시를 창작했습니다. 그의 초기 발라드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호주 부시맨의 애국심과 래리킨 정신이 빛을 발합니다.

그러한 시 중 하나는 그가 1917년쯤 이집트에 있을 때 쓴 부츠(Boots)입니다. 이 시는 갈리폴리에서 가자(Gaza)까지: 제1차 세계 대전의 사막 시인들과 함께 반조 패터슨(Banjo Paterson)의 다른 전시 시들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많은 시인들의 작품과 그 작품이 쓰여진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호주인에게 기독교 유산을 교육하고 알리는 데 전념하는 조직인 Diduno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Banjo Paterson’s Forgotten ANZAC Role: One of the Least-Known Parts of His Life

Banjo Paterson and Richard Harwell

By: Annie Hamilton

Main image: Australian bush poet A.B. ‘Banjo’ Paterson. Inset: Light Horseman Private Richard Harwell Bryant on his waler, the kind of horse broken in and trained by Banjo Paterson. Bryant died aged only 38 while serving in Beirut, Syria, 1918. Photo: Australian War Memorial. All photos: Public Domain

Those tough Aussie horses, broken in and trained for the exact task before them, struggled in the soft, burning Middle Eastern sand, their fetlocks sinking deep in the desert hills.

The dust of their efforts was a rising column in the still, searing air. The relentless blazing sun seemed intent on delivering one message: ‘Go home, Aussie. This place is for camels, not horses’.

It was the Sinai Desert, 1917—more than one hundred years ago.

After the evacuation at Gallipoli, Anzac troops were sent back to Egypt, from where they were ordered to liberate of the Holy Land, then ruled by the sultan of the Ottoman Empire. Reunited with their horses, the Light Horsemen set off across the desert, their emu plumes waving.

“They flicked through their military-issue Bibles, awed with the thought that they were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Moses, Abraham and Jesus.”

A group of bushmen from Queensland soon had a solution to that soft-sand problem. In anticipation of trench warfare like that in Gallipoli and France, some chicken wire had been sent to prevent sand from sliding and caving in any defences. But the bushies knew it could be used to build a road. Soon the horses and troops with their 30 kg of kit were using this unusual ‘highway through the desert’.

Many were conscious, as they travelled, that this was the route that the Christ Child must have taken on returning from Egypt after escaping the murderous King Herod. They flicked through their military-issue Bibles, awed with the thought that they were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Moses, Abraham and Jesus.

Looking back, we can see these Aussies, too were riding into history – on their faithful Walers. The great horses had been brought out on troopships from Australia and corralled at Heliopolis in Egypt. Every farmer had to donate a horse to the war effort and, as those breaking them in were to learn, it was rarely the best beast.

How Banjo Paterson Helped in the Lighthorsemens’ Success

he 12th Light Horse Regiment in training at Holsworthy, NSW, 1915

Above: The 12th Light Horse Regiment in training at Holsworthy, NSW, 1915. Photo: Sydney Mail

Leading the team of horsebreakers that broke in the feral brumbies – those famous ‘wild bush horses’ – as well as farmer’s nags and the occasional decent pony, was a man renowned throughout the English-speaking world for his poetry: AB ‘Banjo’ Paterson, best-known for his works, The Man From Snowy River and Waltzing Matilda.

While many teenagers had added a few years to their age to register for active service, Banjo had dropped a couple from his.

He’d gone to London, hoping to be sent as a journalist to the Western Front in Flanders, but was unable to obtain a position. He drove an ambulance in France but, on learning of the formation of the Australian Remount Squadron in the Middle East, he hurried home.

“It was the behind-the-scenes efforts of these world-class trainers that made possible the famous Light Horse charge at Beersheba on 31 October 1917.”

Commissioned in the Australian Imperial Force, he was eventually sent to Moascar in Egypt to command a motley group of men including buckjumpers, circus performers, farriers and veterinarians. They broke in thousands of horses and mules, shod them, fed them, groomed them, raced them, trained them for battle conditions and kept the best of them for the ordinary front-line trooper. This was despite, as Paterson noted, the constant efforts of officers to secure the best mounts for themselves.

It was the behind-the-scenes efforts of these world-class trainers that made possible the famous Light Horse charge at Beersheba on 31 October 1917. As one trooper quipped, in typical laconic Aussie style, the success of the charge wasn’t about the heroism of the troops but that the men couldn’t hold the desperately thirsty horses back once they smelled the water.

The beginning of the liberation of the land God had promised to Abraham wasn’t so much about a single charge as the coordinated efforts of many units working together.

Anzacs Who Carried the Bible With Them

The 3rd Light Horse Regiment and the Australian light horsemen

Above: (L) The 3rd Light Horse Regiment, AIF, at Palestine, with Bethlehem in the background, 1918/19. Photo: Australian War Memorial. (R) Australian light horsemen on their walers before leaving Australia, November 1914. Trooper William Harry Rankin Woods at front, of the 1st Light Horse Regiment, would be one of the first light horsemen killed at Gallipoli, dying from his wounds on May 15, 1915. Photo: AWM.

The Anzacs were conscious the wells of Beersheba featured strongly in Biblical history. The famous khaki New Testament ‘On Active Service’ was issued to the Australian Army; it came in two different blue hues for the Navy and Air Force. More than one million copies were carried to war in shirt pockets.

‘Banjo’ was no stranger to the Bible. His mother, Rose, ensured that the Bible and nightly prayers were the family’s strongest companions. His mother was very keen for her children to understand how the Scriptures emphasised concern for others as well as good manners and respect for all.

Why Didn’t Banjo Paterson Write Poems About the Lighthorse?

The 5th Australian Light Horse Regiment crossing the River Jordan

Above: The 5th Australian Light Horse Regiment crossing the River Jordan on a pontoon bridge between Jersualem and Moab, at Ghoraniye, April 1918. Photo: Australia War Memorial.

‘Banjo’ Paterson is immortalised on our ten dollar note. Yet his role in the Anzac battalions is one of the least-known parts of his life.

It has slipped to obscurity, perhaps because – mysteriously – he never wrote a poem about the great Walers he worked so hard to train.

Or if he did, none of those writings have survived.

Perhaps he found their loyalty and faithfulness too heart-breaking to commemorate once the decision was made to leave all but one of the horses behind after the war was over. For many Aussies, the unthinkable came to pass when they had to leave their ‘best mate’ behind.

‘Banjo’, however, did produce some poems during the war. They’re not nearly as famous as his earlier ballads, but the patriotism and larrikin spirit of the Aussie bushman shines through.

One such poem was Boots, written while he was in Egypt somewhere near 1917. The poem is found in From Gallipoli to Gaza: The Desert Poets of World War I, along with other wartime verses by Banjo Paterson. It includes works by many other poets, as well as stories of the circumstances in which they were written.

Article supplied by Diduno – an organisation dedicated to educating and informing the next generation of Australians of our Christian heritage.